사전에는 「시장가격의 변동을 예상하고 그 차익을 얻기 위하여 행하는 매매·거래」를 투기라고 정의합니다. 즉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 생기는 매매차익을 노리는 행위가 투기입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완전한 정보를 얻는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불완전 정보에 가격의 변동을 예상한다는 것은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수반합니다.
시장경제가 고도로 발달하면 가격변동에 따르는 위험 자체를 사고파는 시장이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위험 혹은 위험회피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을 위험시장이라 합니다. 위험시장의 대표적인 예로는 선물시장과 보험시장이 있습니다.
1. 선물시장
선물시장이란 선물이라는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입니다. 선물이란 어떤 상품을 현재 결정한 가격으로 미래의 특정 시점에서 인도할 것을 약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시장은 거래가 이루어지는 즉시 상품이 인도되는 현물시장입니다. 그러나 선물시장에서는 현재 일정한 가격으로 거래량은 결정되지만, 상품이 인도되는 것은 미래의 특정 시점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옥수수·밀·설탕·구리 등의 농·광산물과 주식을 선물로 거래할 수 있습니다. 농부가 가을에 옥수수를 현물로 즉시 팔아치울 수도 있지만, 선물로 팔고 내년 봄까지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약정일에 약정된 가격으로 넘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때 선물을 사는 사람을 투기자라 부릅니다. 선물로 파는 경우 농부는 내년 봄까지 보관했다가 그때 가격으로 시장에 팔 때 생길 위험이 없어집니다. 따라서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농부는 선물로 팝니다. 내년 봄 약정일에 현재 약정된 가격보다 시장가격이 높아지면 선물로 산 투기자는 산 가격보다 비싸게 팔 수 있어 차익을 얻습니다. 그러나 시장가격이 약정가격보다 낮아지면 투기자는 손해를 봅니다. 이런 위험을 기꺼이 인수하는 투기자가 있기에 선물시장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농산물에 선물시장이 있으면 농부가 추수기에 현물로 공급하는 수량이 적어지기에 추수기의 농산물가격이 지나치게 낮아지는 것을 막습니다. 또한 선물거래로 단경기에 공급하는 물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단경기의 농산물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도 막습니다. 투기자의 투기행위가 추수기와 단경기 간의 가격변동폭을 줄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가격변동을 줄이는 투기를 유익한 투기(profitable speculation)라고 합니다.
유익한 투기가 이루어지면 가격변동이 줄어들어 안정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기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이익을 봅니다. 투기자도 싼 가격으로 사서 비싼 가격으로 팔아 매매차익을 얻기 때문에 이익을 봅니다. 투기자가 유익한 투기를 할 수 있는 것은 가격변동에 대한 예측이 상대적으로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예측은 좋은 정보가 많이 축적되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투기자가 정보의 부족으로 가격변동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면 높은 가격으로 사서 낮은 가격으로 팔게 되어 손해를 봅니다. 이 경우 생산자와 소비자도 손해를 보기 쉽습니다. 가격이 높을 때 투기자가 사면 수요가 증가하여 가격이 더 높아지고 가격이 낮을 때 투기자가 팔면 공급이 증가하여 가격이 더욱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가격변동을 증폭시키는 투기를 불익한 투기(unprofitable speculation)라고 합니다. 당연히 유익한 투기가 많이 이루어질수록 좋습니다. 따라서 한 시장이 예측 능력이 우수한 전문투기자를 되도록 많이 갖는 것은 시장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투기자가 많아 투기자들 간에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가격변동폭은 더욱 좁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투기자 혹은 투기꾼이라는 말은 깎아내리는 어감을 가지고 있지만 투기자는 흔히 시장위험을 분산시켜 주고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도와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한국에서는 1996년에 주가지수 선물거래가 시작됨으로써 선물거래 시대가 막을 열었습니다. 주가지수 선물거래는 주식시장 전체의 시세 움직임을 나타내는 주가지수를 대상으로 하는 선물거래입니다. 1999년에는 금리·환율·금 등에 대해서도 선물시장이 개설되었습니다.
2. 보험시장
뜻밖의 사고를 당하여 경제적 손실을 보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게 손해보험이라는 서비스입니다. 갑자기 사망하여 입게 될 경제적 손실에 대비하기 위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게 생명보험이라는 서비스입니다. 손해보험이나 생명보험이라는 서비스를 구매하게 하는 경제주체는 보험회사입니다. 보험서비스의 가격을 흔히 보험료라고 부릅니다.
보험서비스는 사고판다는 것은 소비자가 평소에 보험료를 내고 보험회사는 해당 사고가 일어났을 때 얼마를 지불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계약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해당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때는 소비자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평소에 내는 보험료만 날립니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약정된 일정 금액인 보험금을 보험회사로부터 받습니다. 이처럼 소비자는 보험료를 지불함으로써 보험회사가 대신 위험을 지는 형식으로 위험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보험회사가 각종 위험을 인수하여 보험료를 받고 사고가 났을 때 보험금을 주는 투기자라 할 수 있습니다.
보험회사가 위험을 인수할 수 있는 건 통계학에서 다루는 대수의 법칙(the law of large numbers) 때문입니다. 동전을 단 한 번 던질 때는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전을 100번 던지면 앞면과 뒷면이 돌아가면서 나올 수 있습니다. 실험 횟수가 많을수록 평균치에 가까운 결과가 나오는 것을 대수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어느 한 집에 불이 날 확률은 잘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10만 채의 집에 불이 날 확률은 대수의 법칙에 의해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잘 예측할 수 있습니다.
같은 조건의 보험상품을 공급하는 보험회사가 아주 많아 가격수용자로 행동한다면 보험시장은 보험료를 종축, 보험거래량을 횡축으로 하는 평면에서 보험서비스 수요곡선과 보험서비스 공급곡선으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다른 조건이 일정할 때 보험료가 비쌀수록 보험회사는 더 많은 양의 보험서비스를 공급하고 소비자는 더 적은 양의 보험서비스를 소비합니다. 따라서 보험서비스 공급곡선은 우상향하고 보험서비스 곡선은 우하향합니다. 두 곡선이 만나는 수준에서 보험시장의 균형 보험료와 보험거래량이 결정됩니다.
대부분의 경제주체는 온갖 위험에 대비해 보험에 들고 싶어 하지만 현실 세계의 보험회사는 모든 위험에 대한 보험서비스를 공급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기업제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 제품가격이 하락하고 판매량이 감소하여 기업이 손해를 보기 때문에 기업은 자기 제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할 위험에 대비하여 보험을 들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보험상품을 공급하는 보험회사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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